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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삼교족보서(三校族譜序)2026-09-14 10:18
Name Level 10

三校族譜序(丁亥譜)

夫有氏則有譜有譜則有序古也吾氏之居于鐵山者不啻數千戶矣移去于他鄕者亦不啻幾千戶矣皆爲所居之大姓而所未詳者譜也或有譜而未分明者譜之序也今吾氏之譜方爲改刊而所未備者惟序也且譜者明先祖之來系繼後裔之分派也苟非譜何以知世代遠近又何別宗族之親疎也吾宗之來系邈乎悠遠則譜不可無而序亦父得不詳者也肆惟前此遠覓於江華島而未得者以其失火之致也近搜於漢城府而無徵者以其兵燹之後也不可考吾氏之上系只以翰林公爲鐵山始居之祖而失其墓矣粤在戊午始得誌表於宣川山面栗洞新倉後改封焉此豈非我先祖積善餘慶之致耶且夫所關捩者氏族之分派也其源之所來者譬如銀潢之落自九天也其派之所分者又如三湘與五湖也溯其同源而分流則尤不可闕一也玆庸改刊之初極如審愼如張槎之尋河禹橇之窮源矣嗚呼其初一人之身葛藟苽緜分爲十餘派則譜之改刊者豈不重且大哉以予不次祇承宗長之命略序如左焉

丁亥(一八二七年)十月 日

後孫 永 謹序

 
 

삼교족보서(三校族譜序)


무릇 씨족(氏族)이 있으면 족보(族譜)가 있고, 족보(族譜)가 있으면 예로부터 연계(連系)돼온 대수(代數)가 있다. 우리 정씨(鄭氏)로서 철산(鐵山)에 거주(居住)한 사람이 수천호(數千戶)에 달할 뿐 아니라 타향(他鄕)에 이거(移居)한 자(者)도 기천호(幾千戶)가 된다. 우리 정씨(鄭氏)가 사는 곳마다 대성촌(大姓村)을 이루고 있으나 보책(譜冊)에는 상세(詳細)하게 나타나 있지 않으니 이는 보(譜)에는 있으나 분명(分明)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 대다수(大多數)인 것 같다.

지금 우리 족보(族譜)를 간행(刊行)하려고 하나 아직 미비(未備)된 것이 대수(代數)이다. 또 보(譜)는 선조(先祖)로부터 내려오는 대수(代數)와 친족간(親族間)의 원근(遠近), 친소(親疏)들의 분파지계(分派支系)를 소상(昭詳)하게 밝히는데, 그 큰 의의(意義)가 있으니 족보(族譜)를 올바르게 만들지 않으면 어찌 세대(世代)의 원근(遠近)과 종족(宗族)의 친소(親疏)를 구별(區別)할 수 있겠는가.

우리 정씨(鄭氏)의 내계(來系)가 아득하게 멀어 족보(族譜)가 없을 수 없고 대수(代數)도 상세(詳細)히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 족보(族譜)의 간행(刊行)에 앞서 족보(族譜)에 관련(關聯)된 자료(資料)를 얻으러 강화도(江華島)를 찾았으나 거기에서 아무런 자료(資料)도 얻지 못했으니 이는 난리(亂離)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근래(近來)에 또 한양(漢陽)에 가서 자료(資料)들을 찾아 보았으나 여기에서도 또한 찾을 수 없었던 것은 난리(亂離)로 인(因)해 모든 것이 흩어지고 망실(亡失)되었기 때문이리라.

우리 정씨(鄭氏)가 상계(上系)를 이어오지 못하고 다만 한림공(翰林公)께서 철산(鐵山)의 낙향시조(落鄕始祖)가 되셨는데, 그 분묘(墳墓)가 실전(失傳)되었더니 지난 무오년(戊午年)에 처음으로 선천(宣川)에서 지표(誌表)를 찾음으로서 선천(宣川) 산면(山面) 율동(栗洞) 신창후산(新倉後山)에 개봉(改封)하니 이는 어찌 우리 선조(先祖)께서 적덕(積德)하신 결과(結果)가 아니겠는가.

또 한곳에 모아야 할 것이 각각(各各) 나누어진 것을 분파(分派)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씨족(氏族)이 근원(根源)을 삼고 내려온 원류(源流)가 흡사(恰似) 하수(河水)가 구천(九天)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이 높고 먼 곳이므로 그 분파(分派)됨은 또 삼상(三湘) 및 오호수(五湖水)와 같다. 이 분파(分派)된 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원천(源泉)을 만나게 되니 나누어 흘러가는 지파(支派)라 해도 하나도 궐루(闕漏)되서는 안된다. 이에 우리 족보(族譜)를 새로이 다듬어 개간(改刊)함에 있어 먼저 그 근원(根源)을 찾아 뗏목을 타고 운하(運河)를 가듯 해야 할 것이다.

아아! 시조(始祖) 한 분의 뒤가 칡넝쿨처럼 뻗어 십여파(十餘派)로 나누어진 지금 보(譜)를 개간(改刊)하는 일이 어찌 중대(重大)한 일이 아니겠는가. 종장(宗長)의 명(命)을 받들어 이상(以上)과 같이 서(敍)하노라.


일팔이칠년(一八二七年)(정해(丁亥)) 십월(十月)에 후손(後孫) 영(永)이 근서(謹序)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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