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 자료

Title삼교족보서(三校族譜序)(정해보(丁亥譜))2026-09-14 10:15
Name Level 10

三校族譜序(丁亥譜)

昔太史公爲自序以明其司馬氏之本源於司馬錯蘇老泉爲族譜以述其上系於蘇忿生則自馬錯至馬遷不知其幾許代而非是序則不可考也自忿生至老泉亦不知其幾許世而非是譜則不可徵也此譜之所以作也噫惟我鄭氏粤自三韓蔓延一國皆爲大姓而居于鐵山者最蕃昔在丙午先宗長宗僑氏倡儀鋟譜其後五十一年丙申宗長信興又爲聯譜至于今五十有二年子姓益繁不入於父系孫不入於祖系以至于子之子孫之孫其祖孫間者不知其幾寸祖孫其弟兄間者不知其幾寸弟兄脈賣相對有似塗人今玆宗長東赫氏慨然有收族之意與某某有志者積歲經營今迺編輯觀於此譜者孝悌之心油然而生矣嗚呼自我祖落鄕之後上系尙不能繼此先人所齋欝茹恨者久矣玆余使子持平顯璞族孫縣監義命遍搜於漢城及江華而亦未得信蹟回溯馬氏之爲序蘇氏之編譜則其於追憾之懷曷有其極哉更無可徵之地遂仍舊貫而以翰林公爲中始祖而編譜焉

歲丁亥(一八二七年)

 

 

 

삼교족보서(三校族譜序)(정해보(丁亥譜))


옛적 태사공(太史公)이 자서(自序)를 지어 그 사마씨(司馬氏)의 본원(本源)을 사마착(司馬錯)에서 밝혔고, 소노천(蘇老泉)이 족보(族譜)를 지어 그 상계(上系)를 소분생(蘇忿生)에게서 서술(述)하였으니, 곧 마착(馬錯)으로부터 마천(馬遷, 사마천司馬遷)에 이르기까지 그 몇 대(代)인지 알지 못하되 이 서(序)가 아니면 가히 상고(考)할 수 없고, 분생(忿生)으로부터 노천(老泉)에 이르기까지 또한 그 몇 세(世)인지 알지 못하되 이 보(譜)가 아니면 가히 징(徵)할 수 없으니, 이것이 보(譜)가 지어지는 까닭이다.

아아, 오직 우리 정씨(鄭氏)는 저 삼한(三韓)으로부터 한 나라에 만연(蔓延)하여 다 대성(大姓)이 되었으되 철산(鐵山)에 거(居)하는 자가 가장 번성(蕃盛)하다. 옛적 병오(丙午)에 선종장(先宗長) 종교씨(宗僑氏)가 창의(倡儀)하여 보(譜)를 새겼고(鋟), 그 후 오십일년(五十一年) 병신(丙申)에 종장(宗長) 신흥(信興)이 또 연보(聯譜)를 지었으며, 지금에 이르러 오십유이년(五十有二年)에 자성(子姓)이 더욱 번성(繁盛)하여 자(子)가 부계(父系)에 들지 못하고 손(孫)이 조계(祖系)에 들지 못하여 자(子)의 자(子)와 손(孫)의 손(孫)에 이르러, 그 조손간(祖孫間)의 자(者)가 그 몇 촌(寸)인지 알지 못하고, 조손(祖孫)의 형제간(兄弟間)의 자(者)가 그 몇 촌(寸)인지 알지 못하여 맥맥(脈脈, 혈맥)이 서로 대(對)함이 도인(塗人, 길가는 남)과 흡사(似)하다.

이제 종장(宗長) 동혁씨(東赫氏)가 개연(慨然)히 수족(收族)의 뜻이 있어 모모(某某)의 유지자(有志者)와 더불어 여러 해(歲)를 경영(經營)하여 이제 이에 편집(編輯)하니, 이 보(譜)를 보는 자는 효제(孝悌)의 마음이 유연(油然)히 생겨날 것이다.

아아, 우리 조상(祖上)이 낙향(落鄕)한 뒤로 상계(上系)를 오히려 능히 잇지 못하니, 이는 선인(先人)이 재(齋, 재계)하며 울여한(欝茹恨, 답답한 한)을 품은 지 오래이다. 이에 내가 자(子) 지평(持平) 현박(顯璞)과 족손(族孫) 현감(縣監) 의명(義命)으로 하여금 한성(漢城)과 강화(江華)를 두루 찾게 하였으나 또한 믿을 만한 자취(信蹟)를 얻지 못하니, 돌이켜 마씨(馬氏)의 서(序)와 소씨(蘇氏)의 편보(編譜)를 소급(遡)하여 생각하면 그 추감(追憾)의 회포(懷)가 어찌 그 극(極)이 있으리오. 다시 가히 징(徵)할 만한 곳이 없으니 드디어 구관(舊貫)을 인(仍)하여 한림공(翰林公)으로써 중시조(中始祖)를 삼아 보(譜)를 편(編)하노라.


세(歲) 정해(丁亥)(一八二七年)

Comment
Captcha Code
(Enter the auto register prevention c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