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족보서(重刊族譜序)(병신보(丙申譜))
우리 종중(宗中)이 옛적에는 보(譜)를 새기지(鋟, 판각) 못하였다가 병오(丙午)에 이르러 선종장(先宗長) 종교씨(宗僑氏)가 지형(之亨)ㆍ석도(碩道)ㆍ중후(重垕)ㆍ상필씨(尙弼氏)와 더불어 세월(歲月)의 공(工)을 쌓아 편집(編輯)하여 한 부(部)를 인쇄(印刷)하였고, 선종장(先宗長) 경팽씨(景霶氏)의 구서(舊序)로써 그 권(卷)에 변(弁, 서문을 앞에 둠)하였으니, 대개 존조(尊祖) 합족(合族)의 뜻이었다.
이제 오십유일년(五十有一年)의 오램에 이르러 자성(子姓, 자손)이 더욱 번성(繁盛)하니, 처음 나뉘어 칠파(七派)가 되었다가 또 나뉘어 십이파(十二派)가 되니, 병오(丙午) 이후에 태어난 자는 이미 손자(孫子)를 안았으되 조계(祖系)에 들지 못한 자가 그 얼마인지 아버지도 알지 못한다. 본래 한 사람의 몸에서 나왔으되 도리어 면목(面目)을 알지 못하고 성명(聲名)을 아버지가 들었어도 사람이 그 근본(根本)을 돌아보아 생각함이 누구인들 마음이 슬프지(愴) 않으리오.
이제 종장(宗長) 신흥씨(信興氏)가 개연(慨然)히 수족(收族)의 뜻이 있어 창의(倡議)하여 계술(繼述)하니 첨의(僉議, 여러 의논)가 대동(大同)하여 이에 나와 동종(同宗) 칠인(七人)에게 명(命)하여 가로되, 「보(譜)를 고쳐 닦지 아니하면 조손(祖孫)의 세(世)를 통(統)할 수 없으니 그대는 그 추집(追輯)하여 이를 간행(刊行)하라」 하니, 이는 존조(尊祖) 중본(重本)의 뜻에 관(關)함이 있어 감히 사양하지 못하였다.
물러나 서로 확인(確)하며 편차(編次)하되, 선보(先譜)가 병선(兵燹, 병화兵火)에 잃은 바가 되어 가히 상고(考)할 수 없으니, 하동(河東)의 상계(上系)는 다만 한림공(翰林公)으로써 철산(鐵山)에 처음 거(居)한 시조(始祖)로 삼고, 그 이상(以上)의 세차(世次)인즉 의심(疑心)스러워 능히 드러내지 못하니, 비록 심신(審愼, 살피고 삼감)의 뜻에서 나온 것이나 그 본시(本始)의 뜻을 생각함에 더욱 통현(痛靦, 아프고 부끄러움)한 바가 있으니, 사람이 다 비조(鼻祖)를 이어받되 나만 홀로 이음이 없으니 슬픈 회포(懷抱)가 천지(天地)에 다함이 없으니 이 무슨 인리(人理)인가.
이마의 땀(泚顙)을 무릅쓰고 편집(編輯)하여 보완(輔)하여 후일(後日)을 기다리노라.
병신(丙申)(一七七六年) 춘(春) 후손(後孫) 용징(龍徵) 지(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