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정씨족보구서(河東鄭氏族譜舊序)
무릇 한 종족(宗族)의 세계(世系)를 기록(記錄)한다는 것은 일가(一家) 겨레가 언제 시작(始作)되었고 어디서 살았으며, 어떻게 유지(維持)되어 왔는가를 밝히는 작업(作業)이다. 그러므로 우리 정씨(鄭氏)의 족보(族譜)를 두는 것은 우리 일가(一家) 겨레가 시작(始作)되면서부터 오늘날의 지파(支派) 자손(子孫)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過程)을 소상(昭詳)하게 기록(記錄)하자는 것이다.
대개(大槪) 이러한 보첩(譜牒)을 가지지 못한다면 세대(世代)의 원근(遠近)을 분별(分別)할 수 없기 때문에 이로 인(因)해 일가친척(一家親戚) 사이의 친(親), 불친(不親)을 확연(確然)하게 구별(區別)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를 도록(圖錄)으로 기록(記錄)하지 않을 수 없으며, 우리 일가(一家) 겨레의 시작(始作)과 함께 우리 철산파(鐵山派)의 분파(分派)된 바도 또한 소상(昭詳)하게 밝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같은 까닭으로 우리가 족보(族譜)를 편찬(編纂)하게 되었으니 이는 다만 우리 정씨(鄭氏) 뿐만 아니라 모든 씨족(氏族)들이 수보(修譜)에 노력(勞力)을 기울이는 소이연(所以然)이다.
고금(古今)을 막론(莫論)하고 성씨(姓氏)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이 보첩(譜牒)을 만들어 한 집안 또는 그 종족(宗族)이 대대(代代)로 간직하여 구전(久傳)해 옴으로써 조상(祖上)을 추모(追慕)하고 근본(根本)을 찾아 동족간(同族間)의 화목(和睦)을 도모(圖謀)하게 되는 것이니 이러한 일이 어찌 종족일가(宗族一家)를 위(爲)하는 중요(重要)한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 정씨(鄭氏)는 삼한시대(三韓時代)부터 시작(始作)되었는데 특(特)히 하동파계(河東派系) 자손(子孫)들이 전국(全國)에 번성(繁盛)하여 살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대성(大姓)으로 일컬어져 왔다. 그 가운데 철산파(鐵山派)가 더욱 번성(繁盛)하여 지금(至今) 현달(顯達)한 직위(職位)에 올라 명망(名望)이 높은 사람을 위시(爲始)한 다른 족인(族人)들의 수(數)가 천여인(千餘人)에 이르니 한 현읍(縣邑)이 이러한데 하물며 팔도(八道)에 산재(散在)하는 수(數)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아! 처음에는 시조(始祖) 한 분이 계셨을 뿐이었는데 한 사람의 후예(後裔)들이 널리 번창(繁昌)하여 마침내 천여명(千餘名)에 이르니 이는 어찌 우리 시조(始祖)께서 큰 덕(德)을 쌓으신 결과(結果)가 아니겠는가.
내 일찍이 중국(中國) 송(宋)나라 소노천(蘇老泉)(노천(老泉)은 동파(東坡)의 부(父)인 순(洵)의 호(號))가(家)의 족보(族譜)를 열람(閱覽)하였는데 그 서문(序文)에서 이르기를 족보(族譜)에 등재(登載)되지 않은 사람은 친(親)한 친척(親戚)에서 제외(除外)되는 먼 촌수(寸數)의 종족(宗族)일 뿐이라고 하였고, 또 촌수(寸數)에서 멀어지면 오복(五服)에서도 제외(除外)되는 것이니 남과 다를 바 없다고 하였으니 이러한 사실(事實)에서 소노천(蘇老泉)의 박정(薄情)함을 엿볼 수 있었다.
무릇 형제(兄弟)는 한 사람에게서부터 나누어지는데 상복(喪服)은 가까이로는 참(斬)ㆍ제(齊)ㆍ최(衰)로부터 멀리로는 시마(緦麻)에 이르는 것으로 이를 복(服)으로 치지 않고 만약(萬若) 대수(代數)로 헤아리면 이는 모두 동고조(同高祖)의 친척(親戚)이 된다. 선성(先聖)들의 제체(制體)에서 예(禮)는 번거롭지 않아야 하고 절검(節儉)을 숭상(崇尙)하도록 규정(規定)했다. 그러니 어찌 친(親)함을 다하고, 오복(五服)을 함께 한다면 이들을 딴 사람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범문정공(范文正公)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종족(宗族) 백여인(百餘人) 중(中)에 나에게는 가깝기도 하며 또 멀기도 한 일가(一家)가 있지만 우리 조상(祖上)께서 보신다면 그 한 분의 자손(子孫)이므로 다 귀(貴)하게 여길 것이다라고 했으니 이는 진실(眞實)로 참된 말씀이시다. 만일(萬一) 같은 고조부(高祖父) 자손(子孫)이 서로 보기를 남과 같이 한다면 조상(祖上) 신령(神靈)께서 어찌 나에게 자손(子孫)이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겠는가.
이른바 소씨(蘇氏)의 족보(族譜)는 그 종족(宗族) 일가(一家) 사람들의 친(親)ㆍ불친(不親)을 나타내기 위(爲)한 것일 따름으로 이는 소씨(蘇氏) 자손(子孫)들을 수족(收族)하기 위(爲)한 족보(族譜)의 본래(本來)를 망각(忘却)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우리 하동정씨(河東鄭氏) 족보(族譜)는 시조(始祖)이신 휘(諱) 응(膺)으로부터 자손만대(子孫萬代)에 이르는 동안의 수족(收族)임은 물론(勿論)이고, 종족(宗族)의 신분(身分)의 고하(高下)와 여식(女息)과 외손(外孫)까지 기사란(記事欄)에 기록(記錄)하였으므로 후세자손(後世子孫)들이 이 족보(族譜)를 참고(參考)하게 되면 친족간(親族間)의 친(親)ㆍ불친(不親)과 대수(代數)의 원근(遠近)과 항렬(行列) 그리고 어느 파(派)의 자손(子孫)인가를 살필 수가 있다. 이는 곧 종친간(宗親間)의 정의(情誼)를 돈목(敦睦)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소씨(蘇氏)의 보(譜)는 우리 정씨보(鄭氏譜)에 비(比)하면 박약(薄弱)한 것으로 보책편찬(譜冊編纂)의 참된 의의(意義)가 결여(缺如)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명왈(銘曰)
하늘이 큰 복(福)과 덕(德)을 주시니 우리 정씨(鄭氏) 창성(昌盛)하도다. 충효(忠孝), 선행(善行), 경사(慶事)로운 일 영원(永遠)하도록 전(傳)하리니 세세무궁(世世無窮)토록 욕(辱)됨없이 복(福)되소서. 자자손손(子子孫孫) 영원(永遠)하도록.
서기(西紀) 일육육육년(一六六六年)(현종(顯宗) 칠년(七年) 병오(丙午) 춘(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