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조행적촬록서(顯祖行蹟撮錄序)
화려(華麗)한 행적(行蹟)을 남긴 선조(先祖)들의 업적(業績)을 소상(昭詳)히 밝히는 것은 후손(後孫)들에게 귀감장려(龜鑑獎勵)토록 하고자 함이라.
우리 정씨보(鄭氏譜)가 처음으로 판목(板木)에 인각(印刻)된 것이 일육육육년(一六六六年)으로 지금 사교(四校)에 침록(鋟錄)된 것에서 상하(上下)의 세계(世系)와 본지파(本支派)는 구별(區別)될 수 있으나 현조(顯祖)께서 행(行)하신 사적(事蹟) 등(等)은 등재(登載)된 바 없었는데, 이는 사적(事蹟)들이 가승(家乘)에 실려 왔기 때문이라고 하겠는가? 아니면 보(譜)의 번잡(繁雜)한 지면(紙面) 때문에 생략(省略)되었는가?
그러나 가승(家乘)의 기록(記錄)은 종씨(宗氏)들의 집집마다 소장(所藏)할 수 없기 때문에 사적(事蹟)을 널리 전파(傳播)하는데는 실효(實效)가 적다. 그러므로 보첩(譜牒)의 편집(編輯)은 후손(後孫)들이 접(接)할 수 있는 것이어서 이 막중(莫重)한 선조(先祖)의 행적(行蹟)을 수록(收錄)치 아니하고 보책(譜冊)에서 빠뜨리게 되면 마치 옥(玉)을 독(櫝) 속에 가두어 두어 빛을 잃게 하는 것과 같다.
선술(先述)하여 후장(後獎)하는 방법(方法)에서 벗어나 족질(族侄) 이홍씨(履洪氏)가 상세(詳細)하게 기술(記述)하여 선적중(先蹟中) 가장 가치(價値)있는 십여편(十餘篇)을 권수(卷首)에 싣고 그 나머지는 산정(刪定)하여 실었으니, 이는 뭇별 가운데 가장 빛나는 북두칠성(北斗七星)과 같은 존재(存在)이고 뭇산 가운데 태산(泰山)과 같은 격(格)이니, 후손(後孫)들이 이를 보고 진심(眞心)으로 체득(体得)한다면 입절(立節)과 수훈(樹勳)하는 데에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일구○팔년(一九〇八年)(무신년(戊申年) 국월하한(菊月下澣))에 후손(後孫) 전중추원의관(前中樞院議官) 정인(正仁)이 근지(謹識)하다